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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중국의 미술

by tada_magic 2023. 10. 16.

중국 미술은 중화민국(타이완)이나 화교가 중국 문화에 기반해 실행한 미술도 중국 미술로 분류될 수 있다. 중국의 예술은 석기 시대에서부터 시작하는데, 그 연대가 기원전 1만년까지 추정된다. 이 당시의 예술은 대부분 단순한 도자기나 조각의 형태를 가진다. 이후에는 왕조에 따라 시간이 지나며 그 미술적 양태가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 회화는 중국이 타국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입었다는 것과, 외래문화에 대해 항시 주체성을 잃지 않고 동화하였기 때문에 그 고유한 특징을 유지하였다. 송나라 시대까지는 도교화·불교화·인물·화조·축수 등 수없이 그려지던 것이 명나라 시대, 특히 중기 이후에는 산수화를 주류로 하게 되었다. 재료의 특질로서는 붓과 묵의 사용을 들 수 있다. 중국에서는 석기 시대에 칠무늬토기의 문양으로부터 발달한 붓의 존재가 짐작되고 채색 회화의 부류는 멀리 은나라 후기에 제작되었던 증거가 있다. 한나라 시대에서는 예교주의국책에 의해 충신, 효자, 열녀 등의 권계화, 신령과 초자연적 세계의 산수화 등이 궁전이나 분묘의 벽화로 그려지고, 돌이나 기와에 새겨졌다.

6조 시대 회화의 특색은 후한 말에 등장하게 된 문인화가에 이어서 다수의 명수를 낳은 점, 그리고 송병·왕 미의 화론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노장사상으로 논증된 뛰어난 예술비평이 행해지기 시작한 점, 제재로서는 종래의 권계화나 설화화외에 새로이 불교 회화가 개척되었던 점 등이다. 유려하고 풍만한 당나라 시대의 회화는 오늘날에 와서는 거의 소실되어 진상을 짐작할 방법조차 없다. 당나라 회화의 중요한 의의는 수묵화의 성립이다. 말기의 선불교 승려들에 의한 취미로 하는 수묵화 이외에 화원을 빼고서는 주목할 만한 화인은 없으나 자유로운 분위기로부터 다양한 화풍이 성행되어 개성적인 작가가 속출하였다.

원나라 시대의 화가는 화원계, 문인계, 거기에 산수화의 이곽파 등 셋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화원계 화인에 비하여 문인화가의 활약은 눈부신 바 있어 동원·미불·미우인 등과, 또 한편으로는 이곽파 화가들도 이성, 곽희 등을 스승으로 받들고, 북송으로의 복귀 운동을 전개하였다. 북송의 여러 선학들의 예술의 본질은 상실되어 자연을 관찰하는 의욕도 희박해지고 기법상으로도 조잡하여, 산수화로서는 구도에 있어 통일성이 결여되고 화면의 원근 표현도 성공을 보지 못하였다. 청나라 초기에는, 망국의 한을 필묵에 싣거나 혹은 회화를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제작에 임한 개성적 작가들이 출현하였다. 그러나 화단을 주로 장악하고 있던 것은 오파의 정통을 계승한 사왕오운의 6대가 와 그 주변의 화인 세력이었다. 중국 최고의 문자는 기원전 1400년경이라 생각되는 은나라의 갑골문이다. 이것은 19세기 말, 허난성 안양현 근교에 있는 샤오툰, 소위 은허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갑골문 은나라 사람이 점에 사용한 거북의 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신에게 묻는 것이나 그 결과를 새긴 기록이다. 현존하는 기원전 1400∼기원전 1100년간의 갑골문은 자형의 변천과 서체에 의해 다섯 시기로 구분되어 있다.



명나라 시대의 회화는 시기적으로나 유파적으로나 대체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기는 명나라 초기에서 영락제까지로, 원나라 말기 4대가 중 예찬과 왕몽은 홍무 시대까지 생존해 있었고, 전자를 답습한 왕불, 후자를 스승으로 하여 모방한 서분등이 활약했고 또한 조원 등도 있었다. 명나라의 회화에서는 이렇듯 궁정의 미술과 지식인의 미술을 이어줄 가교 구실을 할 사람이 없었고 이것은 명대 후반기에 문인화와 직업화의 구분이 더욱 뚜렷해지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것을 보았을 때 조맹부는 그 자신의 회화적인 성취만큼이나 중국미술의 통합과 교류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제2기는 선덕제에서 홍치제까지로, 화원의 질과 양이 공히 충실해졌고, 남송원체의 화조도를 부활시킨 변문진 일족이나 대진을 필두로 한 이재, 석예의 산수, 임량, 여기의 화조등, 절파라고 불리는 화인이 종횡으로 분방한 필묵을 보여주었다. 제 3기는 오파 문인화 외에 만력에서 명나라 말기에 걸쳐서는 다양한 개성적인 작가가 출현하였다. 



청나라 초기에는, 망국의 한을 필묵에 싣거나 혹은 회화를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제작에 임한 개성적 작가들이 출현하였다. 청나라 황실은 선교사들을 이용해 황실의 궁정화가들에게 서양화법을 배우게 하였고 그로 인하여 중국인임에도 원근법과 명암법 같은 서양에서 널리 쓰이는 화법을 구사하는 화가들이 등장했다. 건륭시대에는 이 이외에 상두 양저우를 중심으로 하여 인기가 있던 8괴 라 불리는 그룹이 있었다. 모두 중년을 지나서 그림 작업을 시작하여 화조·산수도 그렸으나, 먹으로 그린 대나무·묵란·수묵화 매화 등 여기적 제재를 취급하였고 또한 기이함을 자랑하는 난폭한 작품도 볼 수 있다. 근대 중국화 양식의 원형은 자유롭고 정형을 무시한 8괴계의 회화이며, 그 영향은 도광,광서, 연간의 조지겸, 민국의 오창석을 거쳐 현대의 중국화에까지도 미치고 있다.



중국 최고의 문자는 기원전 1400년경이라 생각되는 은나라의 갑골문이다.

갑골문은 은나라 사람이 점괘에 사용한 거북의 껍질이나 짐승의 뼈를 이용하여 신에게 묻는 것의 결과를 새긴 기록이다.

주나라 시대에 들어서는 갑골 사용은 쇠퇴하고, 동기의 제작이 성행되었다. 이러한 금문은 점차 기록적인 목적을 확대하여 문장의 길이가 길어졌다. 처음에는 아직 얼마쯤 상형문자의 모습을 유지하나 마침내 필화는 복잡해지고 곡선형이 많아져, 좌우대칭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 시기(기원전 1100∼기원전 250년경)의 서체를 일반적으로 고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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