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

상징주의, 낭만주의

by tada_magic 2023. 10. 22.

상징주의는 1880년대 전후하여 20세기 초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나타난 예술이다. 자연주의나 고답파에 대해서, 주관을 강조하고 정조를 상징화하여 표현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했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기법에 반감을 가졌으며 시인 장 모레아스가 「상징주의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문학에서 자연주의 이후는 상당한 혼잡이 초래된다. 이들은 자연주의의 과학적 결정론에 반대하여 상상과 몽환의 상징을 강조하였고 고체와 보들레르를 선구로 삼았다. 

문학에서 주도적으로 전개되었고 핵심 주제는 당시 서구 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과학 및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의 세계, 상상력과 감각의 세계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상징주의가 보이지 않는 관념을 표현하듯이, 그림에서도 비물질적인 주제에 대한 직관적 표현으로 사물의 본질을 나타내려고 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앙리 루소가 있는데 그 특징으로는 기이한 짐승들과 나무 크기의 꽃들로 이루어진 풍경화를 그렸는데 이는 실존하지 않는 장면으로 사실과 환상이 교차하여 있다. 가시적인 이미지를 통해 비가시적인 관념을 표현한 것이다.
형태가 없는 초자연적인 세계와 관념, 인간의 생·사·불안·사랑·성·꿈·환상 등을 주제로 삼아 그것들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를 찾는 것이고 내면의 감정을 시각화려는 시도이다. 한국에서 상징주의는 1920년부터 1924년까지 5년간은 자연주의와 더불어 문예사상 지배적인 조류였는데, 이들 모두 창조 파에 기원하는 것이었다. 인상주의는 1910년대까지 경향을 이끌어 가다 야수파와 입체주의의 출현으로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 상징의 방식은 현대미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은 인상파에 속한다.
르동은 상징주의자의 시선으로 그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표현하였다. 긴 세월 동안 흑백의 판화를 계속 제작하였는데 1890년대 후반부터 르동은 파스텔, 수채화, 유화에서 색채의 표현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탐구한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속화된 판화에 새로운 기품을 부여함과 동시에 다루는 재료가 괴이하여, 전율이나 유혹을 갖는 몽환적인 매력을 낳고 있다. 유화는 꽃가루가 춤추듯 오색을 흩뿌려서, 르동만큼 이향을 머금어 색채에 감미로움을 풍겼다. 주요 작품으로는 The Birth of Venus, The Cyclops 등이 있다.

낭만주의는 서유럽에서 발생한 미술적, 문학적, 지적 사조이다. 18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800년~1850년 사이에 정점을 찍었다. 지나치게 인간의 이성과 형식을 강조했던 이전과는 달리 감정과 직관, 주관적인 느낌의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한 점이 특징. 강렬한 색채와 명암으로 역동성과 감정을 표현함. 마음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표현했다.
인간은 감정 없이 볼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낭만주의자들의 입장이다. 낭만주의의 첫 주자는 계몽주의 시대에 독일의 루소라고 불리던 헤르더이다. 요한 고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1803)는 독일 근대문학의 중요한 인물이자 철학자, 신학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헤르더는 감정과 감성, 민족 역사를 강조하였으며, 그의 저서 "인류 역사의 철학적 고찰"은 후에 러셀과 헤겔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개인적 표현, 감정, 자연과 민속문화에 대한 강조는 낭만주의자들에게 강한 공감과 영향력을 미쳤다.
낭만주의는 개성을 강조하고, 사회를 과거와 달리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다. 탄생과 성장, 쇠퇴와 소멸을 겪는 것은 사회의 한 특징이라 말하였으며, 이것은 후에 《문명 형태학》(아놀드 토인비)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낭만주의는 이성에 치우친 냉정함이 본래의 감동이나 정열을 없앨까 염려하고 있다. 이미 그것은 제1보로서, 프뤼동의 우아하고 고상한 작품도 로맨틱한 꿈을 생각하게 되지만, 그러나 확연한 기운을 보인 것은 그로의 정열적인 제작이었다. 그로는 루벤스의 정열적인 색채에 심취하고 있으나, 한편에서는 스승 다비드의 엄중한 교의를 존중하면서도 그 자유분방한 천성은 유감없이 작품에 나타나서, 특히 전쟁화에는 초연의 냄새와 더불어 사람을 뒤흔들 것 같은 감동이 움직이고 있다.

낭만주의 미술의 진정한 선구자는 프랑스의 테오도르 제리코(Jean Louis Andre Theodore Gericault 1791-1824)였다. 제리코는 1819년 「메두사호의 뗏목 The Raft of the "Medusa" (1818-9)」을 그려 일약 낭만주의 미술의 영웅으로 등장했다. 
구도는 피라미드형 구도이며, 희망과 진취적인 모습, 추악한 모습 모두를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 제작 당시 1816년에 범주 전함 메두사호는 식민지로 향해 가는 관원과 함께 약 400명을 태우고 출발하였으나 암초에 걸려 생사를 다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제리코만의 직설적이며 사실적인 묘사로 표현된 작품이다.  

제리코의 뒤를 이어 등장한 외젠 들라크루아는 19세기 낭만주의 예술의 최고 대표자로 손꼽힌다.

작품의 소재는 종교·신화·문학·역사에서부터 현실의 풍속·인물·풍경·정물 등 다양하다. 벽화·장식을 포함한 유화 외에 데생·수채화·파스텔 화·판화 등 방대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고야, 제리코, 터너의 열정적인 그림들에 더 감정이 이입되면, 더 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들라크루아의 「사자 사냥」이나 터너의 「눈보라 속의 증기선」같이 된다. 들라크루아의 표현적인 붓놀림과 색의 광학적 효과에 대한 연구는 인상주의자들의 작업에 영향을 끼쳤고, 동시에 이국적 취미에 대한 열정은 상징주의 운동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대표 작품으로 <히오스섬의 학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단테의 배> 등이 있다.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르네상스 미술  (0) 2023.10.21
서양 미술사  (0) 2023.10.21
일본의 미술  (1) 2023.10.17
중국의 미술  (0) 2023.10.16
동양 미술사 (한국)  (0) 2023.10.14